안녕하세요 #목동정신과 한음한방신경정신과 홍순상원장입니다.
Old-school Psychiatry에서는 진료장면 중 하나에 속하는, 심리상담 과정에서 제가 자주 인용하는 재미있는 옛 말들을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
과도한 감정기복을 이유로 목동정신과 한음에 내원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화(火), 짜증, 분노..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다만, 화 낼 상황에서 화가 나는 것과, 뜬금없는 상황에 짜증이 터져나오는건 다릅니다.
환자분들께서는 첫 진료에서 이런 질문을 가장 많이 하십니다.
"선생님, 치료 받으면 화를 조절할 수 있겠죠?"
# 분노의 심리학
화를 조절하고 싶다면 도대체 화가 뭔지 정체를 우선 파악해야겠습니다.
화(火)라는 감정은 슬픔 우울 불안 걱정과는 다른 특징이 있답니다.
저는 우리가 어떤 장면에 놓였을때 1차적으로 경험하는 감정이 먼저 존재하고, 이후에 2차적으로 올라오는 것이 화(火)라고 설명드립니다.
불은 땔감이 있어야 붙겠죠? 1차적으로 경험하는 감정, 그리고 그 감정을 기초로 반복될때, 화가 올라옵니다.
예를 들자면,
쉬는날 집에서 아이들에게 식사를 정성껏 차려줬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밥 먹는 모습이 영 시원치가 않네요. 그러면 짜증이 확 올라오면서 "왜 안먹어! 팍팍좀 떠먹어. 깨작거리면 복 달아난다!" 언성이 높아집니다.
(제 이야기 입니다 -_-;)
저는 식사준비(노력)를 열심히 하면서, 아이가 맛있게 먹어줬으면(기대) 좋겠습니다. 그런데 영 시원치가 않아요(1차감정, 서운함). 헛수고 했구나 싶으면서 지난주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엇던게 떠오릅니다. 아까 간식은 홀랑 먹어내던 모습도 떠오르구요. 화가납니다...(2차감정, 분노) 그리고 참아보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집니다.
여기서 재밌는건, 애가 밥을 잘 안먹는다고 항상 화가 나는건 아니라는 겁니다.
어떤 날은 "왜 밥이 맛이 없어? 아빠가 다른거 만들어줄까?" 먼저 묻기도 합니다.
# 곳간에서 인심난다
요즘 자주 사용하는 말은 아니지만,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옛말이 있죠.
옛날옛적 때는 바야흐로 조선시대, 마을에서 가장 잘 사는 김대감집이 있습니다. 농사를 크게 짓다보니 곳간에는 쌀이 항상 그득하니 쌓여 있습니다.
덕분에 몇년에 한번, 마을에 가뭄이 들거나해서 흉작이 들때면, 김대감은 마을 사람들이 보릿고개를 무탈하니 넘기게끔 마음씨 좋게 곳간을 열어 쌀을 나누어줍니다.
"대감님~ 쌀 좀 꿔주십시오 당장 먹을게 없습니다. 내년에 갚겠습니다."
그러게나~ 힘들때면 나누며 지내야지. 여봐라 여기 쌀 댓말 챙겨주거라.
이렇게 말이죠.
그런데 김대감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요놈이 제대로 된 일도 안하고 공부도 등한시 하며 지내다가, 노름에 빠져버렸지 뭡니까. 아버지 몰래 노름에 돈을 잃기 시작하면서 곳간에서 쌀을 꺼내다가 홀랑 팔아먹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그득했던 곳간이 비어버렸네요?! 물론 농사를 크게 짓기때문에 1-2년 지나면 다시 그득해지기야 할 겁니다. 땅을 팔아먹은건 아니니...
그런데! 때마침 가뭄이 들어 버립니다.
마을 사람들은 버티고버티다가 다시금 김대감댁 대문을 똑똑 두드립니다.
"대감님~ 쌀 좀 꿔주십시오 당장 먹을게 없습니다. 내년에 갚겠습니다."
자 여기서 김대감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이보게~ 당장 우리 먹을 쌀도 없다네! 나한테 쌀 맡겨두었는가?! 썩 꺼지게!
굶주려 쌀 꾸려 온 사람에게 되려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 변화 시작은 나부터
내가 밥을 차려줬으니 아이가 맛있게 남김없이 먹어주길 기대하는 마음은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그건 '아이의 숙제'일뿐 내 몫은 아닙니다. 내 몫은 아이가 남김없이 먹어줄걸로 예상되는 음식을 준비하는 것까지 겠죠. 그 뒤는 아이의 몫.
내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 내 감정 하나 어찌 못하는게 보통 사람입니다.
그런데
상대방을 내가 원하는대로 변화시킨다? 이건 매우 어렵겠죠.
다시 처음 환자분의 질문으로 되돌아가보자면,
"선생님, 치료 받으면 화를 조절할 수 있겠죠?"
저는 보통 이렇게 대답해드립니다.
화는 조절하려 하기보다, 어떤 상황에서 화가 올라오는지를 살펴보고, 앞선 상황에서 변화를 만들어 화가 덜 생기게끔 하는게 효과적입니다.
화라는 감정은 내 욕구의 반복되는 좌절에서 발생하거든요. 또 내가 힘들고 여유 없을때 더 자주 발생합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 들어보셨죠.
우선적으로 내가 원하는게 뭐였는지를 알아차리고. 그 다음은 내 욕구와는 다를 수 밖에 없는, 상대방의 욕구를 조금 담아낼 여유공간. 내 마음에 어떻게 그 여유공간을 만들까.. 이게 중요합니다.
좋은하루되세요.